SON MONG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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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영도스윙
다시 표류로_표류를 위한 기념비
이보성(신세계갤러리)
동시대미술에 있어 전시공간은 과거 화이트큐브(white-Ccube)라 불리며 새하얀 입방체로 통일되었던 것과는 달리 일률적이지 않고 다양하다. 물론 하얀 벽면으로 둘린 전시공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공간은 마치 영화관에 들어온 것처럼 미세한 빛조차 허락하지 않는 새까만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고, 또 어떤 공간은 색색의 연출이 되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어떤 공간은 아무런 마감 없이 맨 시멘트 벽면을 그대로 노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각각의 공간이 다르다고 해서 그 목적마저 다른 것은 아니다. 모두 작품을 위해 고안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뜻을 같이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상황에서 더 나아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거리나 폐쇄된 공장, 빈집, 시위 현장, 심지어는 숲이나 바닷가 등 전혀 작품이 전시될 거라고 생각할 수 없는 장소들까지도 전시공간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와 같은 경우, 앞서 예로 든 여러 공간과는 상황이 약간 다른데, 작품보다는 다른 목적이 우선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곳에 놓인 작품들은 그 공간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작품과 공간이 서로를 방해하곤 한다.
손몽주의 이번 전시, 《영도스윙》도 이런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부산항이 보이는 영도 해양로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끄티’는 과거 선박용 발전기를 제조하던 공장으로, 폐쇄된 후에는 물류창고로 활용되었고, 현재는 파티, 공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이뤄지고 있는 공간이다. 문화공간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거친 콘크리트 벽면과 중간중간 쌓여 있는 각종 선박용 물품들, 한쪽에 그대로 놓아둔 사물함 등 창고로 쓰였던 원래의 거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이곳을 전시장이라 생각하긴 어렵다. 게다가 주변에서 배를 손질하는 망치질 소리와 용접 소리, 그곳에서 일하는 뱃사람들의 거친 숨소리가 공간에 온전히 전해질 뿐 아니라, 저 멀리 항구에서 배가 입항하고 출항하는 소리, 심지어는 갈매기 울음소리까지도 전시장에 고스란히 들려 작품에 오롯이 집중하기 어렵게 한다. 더욱이 공간을 마주한 바다의 웅장한 풍경은 관람자의 시선을 작품이 아닌 풍경에 머물게 해 공연 등 다른 문화행사라면 모를까 시각예술인 미술 작품을 전시하기에는 어렵게 느껴진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공간도 작품과 작품의 감상을 방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손몽주의 이번 손몽주는 이번 전시에 크게는 두 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하나는 가로 7m, 높이 6m가량의 거대한 형광연두색 설치물인 <영도스윙>(2019)이고, 다른 하나는 가로 6m의 2단 좌대 위에 놓인 소품들로 <떠 다니는 조각들>(2019)이다. 우선 압도적인 스케일로 관람자를 압박하는 <영도스윙>을 이야기해보자. 개선문을 연상케 하는 구조물에 연두색으로 염색된 그물을 덮은 이 설치작품은 주변과는 확연히 다른 화려한 색감과 거대하고 웅장한 크기로 이질감을 선사해 관람자의 시선을 주변이 아닌 작품으로 이끈다. 그리고 작품의 한 가운데, 그러니까 이 작품이 거대한 문이라고 여긴다면 통로라 생각되는 곳에 그네가 설치되어 있어 관람자로 하여금 탈 수 있게끔 하고 있다. 그네는 딱히 어느 방향이 앞이라고 정해져 있진 않지만 별다른 의식 없이 의자에 앉아 그네를 타다 보면 자연스레 바다를 바라보게 된다. 작품에 집중하기 위해 비단 가려야 할 풍경을 이 작품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바라볼 것을 권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네를 타며 바다를 보다 보면, 주변의 다양한 소음들까지도 작품의 요소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처럼 손몽주는 장소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여 작품의 일부로 수용하고 있다.
손몽주가 이렇게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과 장소를 작품의 일부로 활용하는 것은 비단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손몽주의 이런 성향은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기 시작한 2007년부터 나타난다. 손몽주는 귀국한 해에 대안공간반디의 공모전에 당선되어 개인전 《Come in !》(2007)을 가졌는데, 이때 그는 손보지 않은 목욕탕을 그대로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대안공간반디의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흰 띠로 공간을 나누고 사방을 가로지르는 작품을 선보였다. 작가는 이 전시를 준비하며 “단순한 민무늬의 장소가 아닌 이상, 특정 디자인이나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공간이라면 그 장소의 역사나 배경 정보가 무척 크게 작용한다고 느낀다”(작가노트 중, 2007)고 적었다. 이후 손몽주는 2008년 부산비엔날레 특별전에 초대되어 수영구의 한 폐쇄된 헬스장 탈의실에 들어가 검은 띠로 사방을 두르는 《사라진 동물들》을 선보였으며, 2010년도에는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에 들어가 버려진 집의 내부를 유선형의 띠로 두른 《어둠의 집》을, 다음 해에는 경북 영천에서 빈집의 외부를 노란색의 유선형 띠로 감싼 《새장 속에 새》를, 2013년도에는 동래구 명륜동 빈 상가에 들어가 내부를 흰 띠로 가로지르는 《확장-파장-연장》을 연달아 선보이며 전시하는 공간의 특징은 물론 장소가 가지고 있는 서사도 작품의 요소로 적극 활용해왔다.
이렇게 장소특정적 작업을 지속해온 손몽주는 작품이 놓이는 공간과 장소에 따라 작품이 다루는 내용 또한 조금씩 달리 해와, 이 측면에서 어떤 통일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단 최근 들어 손몽주는 일련의 한 주제를 두고 연달아 전시를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데, ‘표류‘가 그것이다. 이 주제와 연계하여 눈이 가는 전시가 2014년 홍티아트센터에서 열린 《표-류-로》란 전시이다. 전시에 작가는 다대포 해변에 떠내려온 1~4m가량의 거대한 표류목 7개를 흰 띠를 이용해 공중에 달아놓았는데, 각 표류목이 천장에서 바닥으로 자연스레 내려오는 듯한 이미지를 연출하여 전시제목인 《표-류-로》와 맞닿아 말 그대로 ‘표류 그 자체’를 시각적으로 효과 있게 전달했다. 그런데 왜 ‘표류’가 아닌 ‘표류로 향한 길’인 표-류-로(漂流路)였을까? 이를 추측해볼 단서는 작가노트에 있다. 작가는 “물 위에 떠서 정처 없이 흘러감을 표류라 한다. 또한 어떤 목적이나 방향을 잃고 의지와 관계없이 헤매는 것도 표류이다. (중략) 둥둥 떠 있는 표류로 향한 길은 결국 의지와 힘을 뺀 채로 끌려가는 것이 아닌 몸을 그저 맡겨버리는 타협 아닌 타협으로 반복적인 당김과 밀림의 연속 속에 부유된다“(작가노트 중, 2014)고 적었다. 이 글이 필자에게는 흥미롭게 읽혔는데, 무의식적으로 이곳저곳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지를 갖고 흐름에 몸을 내던지는 그런 마조히즘적인 주체성이 암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이런 표류를 그만둘 것이 아니라 표류로 향해 갈 것을 권유하는 것 같기 때문에도 그렇다. 손몽주가 불현듯 주목한 표류목들과 같이 뿌리 없이 떠도는 것,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것들은 그 자체로는 불완전하고 힘없고 약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를 둘러싼 견고한 것들을 위협할 수 있다는 유일한 불안요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최근 학계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디아스포라(diaspora)와 노마드(nomad)에 열을 올리는 것이지 않을까? 더는 출구라고는 보이지 않는 이 견고한 세계의 변화를 꿈꾸면서 말이다.
다시 이번 전시 《영도스윙》으로 돌아와 보자. 공간 한가운데에 설치된 <영도스윙>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어느 특별한 바다 풍경이 아님이 인지된다. 그리고 관람자의 시선은 전체에서 부분으로 옮겨지면서, 바다 위에 떠다니는 것들인 배와 부표 등 부유물에 주목하게 된다. 그네를 흔들며 앉아있는 관람자는 자연스레 그런 부유물들과 동일시되는 느낌을 선사 받는다. 시선을 옮겨 관람자를 둘러싼 거대한 구조물을 바라보면, 거대한 연두색 그물망 안에 각종 부표들과 바다 위를 떠다니는 나무들, 배 등이 안을 틈틈이 채우고 있음이 인지된다. 이 <영도스윙> 뒤에 있는 소품들인 <떠 다니는 조각들> 역시 이를 증거한다. 손몽주는 이번 전시를 두고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부유물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립이고 저항이면서 순응“이라고 말했다. 부유물로 만들어진 거대한 이 구조물과 좌대 위에 정식으로 가지런히 올려진 작은 소품들은 손몽주가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기념비이지 않을까? 계속해서 표류로 나아갈 것을 권장하는 기념비 말이다.